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시스코 피사로 (문단 편집) === 황제 아타우알파의 체포 === 기록에 따르면, 당시 [[스페인]]인들은 겁에 질린 나머지 손대면 톡 터지는 봉선화 같은 상태였다. 스페인군이 총과 철기로 무장했다 한들 쪽수가 심하게 후달리는데다 포위당해 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일부는 워낙 두려운 나머지 오줌까지 지렸다고 한다.(...) [[아타우알파]]가 가마를 타고 찾아오자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도미니코회]]의 발베르데 수사였다. 발베르데 수사는 <레케리미엔토>(Requerimiento)를 읽어주었다고 한다. <레케리미엔토>는 [[스페인]] 국왕의 조서로, [[아메리카 원주민]]과 접촉할 시에 의무적으로 읽어주도록 1513년부터 규정되어 있었다. 조서는 >'''"[[토르데시야스 조약|교황 성하께서 스페인의 국왕 폐하에게 이 땅의 지배권을 부여하셨다!]] 그러니까 너의들은 [[카를 5세|스페인의 왕]][* <레케리미엔토>(Requerimiento) 원문이 카스티야의 여왕과 레온 왕국의 왕 및 후계자, 즉 통일 스페인의 왕에게 복종하라는 이야기였으므로 [[신성로마제국]] [[신성로마황제|황제]]의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에게 복종하고 [[기독교]]를 믿어야 한다. 안 그러면 네놈들을 전부 [[노예]]로 삼고, 반항하다 죽으면 네놈들의 책임이다!"''' 같은 식으로 쓰여 있었다. 제정신이라면 수행원들을 이끌고 찾아온 [[크고 아름다운]] 대제국 잉카 황제의 코앞에서 감히 읽어서는 안 될 내용이었지만, 당시의 개척자들은 의무적으로 이걸 읽어줘야만 했다.[* 이 조서는, 의외로 자비심과 동정심의 산물이었다. 이게 만들어지기 전에는 '''[[학살]]부터 했기 때문이다.'''] ~~장담하건데, 통역은 이것을 정말로 벌벌 떨면서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몇몇 역사가들은, 당시에 통역이 워낙 허접해서 아타우알파가 이걸 제대로 못 알아들었을 거라고 보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아타우알파는 통역의 문제였는지 협박이 안 먹혔는지 모르겠지만 "스페인 [[왕]]의 권리"나 "싸우자" 같은 내용에 별 관심을 안 보였다고 한다. 오히려 수사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다"며 조서와 함께 읽어준 [[가톨릭]]의 《[[성경]]》에 흥미를 보였다. '''왜냐하면 [[책]]이나 [[문자]]를 태어나서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이후 벌어진 일은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는 닫혀 있는 《[[성경]]》을 받아 귀를 대본 [[아타우알파]]가, "이 안에는 '[[야훼|하느님]]의 말씀'이 담겨 있다고 했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리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것이냐!!"하며 땅바닥에 던져버렸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베르너 헤어초크]]가 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에서 원주민의 선교~~그리고 살해~~ 이야기로 써먹은 탓에 꽤 유명해졌다. * 다음으로, 발베르데가 [[유일신]]인 하나님을 강조하면서 황제의 신성성을 인정하지 않자 이에 화가 난 아타우알파가 책을 빼앗아 내동댕이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 혹은, 아타우알파는 아무런 의도도 없이 책을 던졌다고도 한다. 왜냐하면 잉카의 황제는 원래 신성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황제가 먹다 남긴 뼈다귀조차 아랫 사람들이 공손하게 집어 황금 단지에 고이 모아둘 정도였다[* 황제가 사용하던 물건은 다른 사람이 사용하면 안 되기 때문에 단지에 모아뒀다가 날을 잡아서 불에 태웠다고 한다.]. 따라서 이 경우 역시 마찬가지로 황제는 고의로 자신의 신성함을 강조하고 이방인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책을 땅에 던졌으며,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곧 아랫 사람 중 누군가가 와서 책을 집어 공손하게 다뤘을 것이라는 것이다. * 다른 버전도 있다. 발베르데 수사는 《[[성경]]》이 아닌 기도서를 손에 들고 있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아타우알파가 냉큼 책을 집어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법도 몰라 쩔쩔맸고 책을 엎었다가 뒤집었다가 쓰다듬다가 흔들었다. 그러자 발베르데가 도와주려고 했다. 문제는 잉카 제국에서 [[아타우알파]]는 지고지엄한 황제이자 태양신의 대리인이었다는 점이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황제는 낯선 이방인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이 되자 [[열폭]]했다. 아타우알파는 발베르데의 팔을 때리고 혼자 책장을 넘겼지만, [[문맹|아무리 봐도 알 리가 없었다.]] 어쨌든 황제는 이내 표정 관리를 하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책을 자기 발 앞에 던졌다. 이후 발베르데가 원래 하던 연설을 끝내자, 아타우알파는 거만한 태도로 선언했다. "난 너희들이 여기 오는 동안 저지른 짓들을 알고 있다. 잡아간 족장과 재물을 내놔라. 안 그러면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겠다!" 그런 뒤에 황제는 가마 위에 우똑 서서 휘하 전사들에게 전쟁을 시작한다고 소리쳤다. 정리하면, '''기록상으로 책을 던진 일은 분명히 일어났다.''' 다만 아타우알파가 정말로 "전쟁 시작"을 외쳤는지는 불분명하다. '''잉카 쪽 기록은 남아있지 않고, 스페인인들이 아타우알파한테 책임을 돌리는 식으로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이 있다.''' 기록을 사실로 간주한다면, [[콩키스타도르]]들에게 제대로 된 친위 병력도 없이 찾아간 아타우알파는 그들 앞에서 '''[[신성모독|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책을 집어 던졌고,]]''' 이어서 '''협박과 [[선전포고]]로 보이는 행동'''을 보인 셈이다. 이 행동에 특히 크게 흥분하고 겁먹은 발베르데는 스페인 측 진영으로 도망치며 >"저들이 감히 하느님을 모독했소. 저놈같은 불경한 자들은 단죄를 할 수 밖에 없소이다! 어서 총공격을 명하세요! 어서요!" 며 소리쳤다고 한다. 이에 피사로는 반대편에 숨어있었던 포병에게 신호를 보냈고, 잉카인들을 향해 대포가 쏟아졌다. 곧바로 몰려나온 기병들도 돌진해 잉카인들을 몰살시켰다. 이런 사태를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잉카인들은 제대로 된 반항도 못한 채 겁에 질려 도망치다가 대규모로 학살당했다. '''이 사건으로 [[아타우알파]]는 피사로 원정대에게 생포되었으며, 무려 100,000명에 달하는 대군이 완전히 [[개발살]]났고, 4,0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잉카인들이 [[학살]]당했다.''' 스페인 측의 피해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0명 에서 최대 5명 정도였다.[* 《잉카 제국의 최후》를 쓴 저널리스트 킴 매쿼리에 따르면 다친 사람은 1명, 그것도 바로 프란시스코 피사로였다고 한다. 그런데 피사로가 다친 것도 잉카인의 공격이 아닌 자신의 부하 때문이였다고 한다.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스페인 보병이 중요한 인질인 황제 아타우알파를 죽이려고 칼을 휘두르는 것을 피사로가 제지하려다가 손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때 수많은 잉카 고위 귀족들도 몰살되었다고 한다. 황제의 가마를 메는 것은 매우 영광스럽고 고귀한 일[* 사실 이건 잉카만 이런 것도 아니다. [[루이 14세]]의 옷을 갈아입히거나 용변을 보고 난 뒤 엉덩이를 닦아준 것도 신분 낮은 시종이 아니라 고위 귀족들이었다.]이었기 때문에, 고위 귀족인 가마꾼들은 팔이 잘려나갈지언정 가마를 놓지 있었다. 가마꾼들이 죽으면 다른 귀족들이 달려와 가마를 멨다. 물론 전부 다 [[끔살]]당했다. 또, 사망자 중 다수는 도망치다가 넘어져 깔려 죽었다고 한다. '''책 좀 집어던졌다고 광란의 대학살이 벌어지고 [[잉카 제국]]이 [[멸망]]의 첫걸음을 떼게 된 유명한 사건'''으로, '''아타우알파의 체포'''(Captura de Atahualpa), 혹은 '''카하마르카 전투'''(Batalla de Cajamarca)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는 구대륙과 신대륙의 충돌로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